Saturday, May 30, 2009
실패를 딛고 일어나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실패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될까?
단 한번의 실수도 단 한번의 좌절도 경험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일이 모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루 하루가 힘겹다. 죄악세상 아직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의인들이 맘 편하게 살 수 없다. 누구나 실패와 실수와 낙담과 좌절과 슬픔과 눈물과 잠 못 이루는 잠을 겪게 된다.
혹자는 이야기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마라.
그만큼 우리의 삶 자체가 가시밭길이다. 살아가면서 비옥한 옥토를 이루는 날도
있지만 황량한 가시밭길이 더 많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광야의 인생길이라고 한다.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라. 신앙인으로 우뚝 선 믿음의 대장부들은 한결같이 시련을 밑거름으로 삼고 믿음의 승리를 거둔 사람들이다.
광야(曠野)의 사전적 의미는 텅비고 아득히 넓은 들이다.
황량하고 개간되지 않은 땅이란 말이다. 그런 광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성경에서 광야라는 단어는 (4057, 미드바르) 인데 이 말은 바로 (1696, 다바르) 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뜻은 '말하다' '선언하다' '약속하다' 라는 뜻이다. 즉,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지러운 세상 중에 살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지만,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그분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광야의 시절은 참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야 시절을 대표하는 사람이 모세이다. 모세는 40년간 바로의 왕궁생활로 당시 최강국이었던 애굽의 모든 교육을 매스터 한 사람이다. 왕자로서의 엘리트교육, 군사교육, 앞으로 애굽을 이끌어갈 수 있는 모든 왕실교육을 받아서 무언가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어느 날 히브리 노예들의 어려운 삶을 보게 되고, 학대하는 애굽인에 대하여 의분을 숨길 수 없어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출2: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HRV)
Ex 2:11 One day, after Moses had grown up, he went out to where his own people were and watched them at their hard labor. He saw an Egyptian beating a Hebrew, one of his own people. (NIV)
출2: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HRV)
Ex 2:12 Glancing this way and that and seeing no one, he killed the Egyptian and hid him in the sand. (NIV)
온유함이 지면에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는 모세를 대표하는 성격을 무색케 하는 사건이었다. (민12:3)
이제 모세는 한 사람의 살인자가 되어 바로의 눈을 피하여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그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가는 도망자의 신분이 된 것이다.
한때 애굽의 왕자였던 그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개의 양치기가 되어 40년을 보낸다. 이것은 '광야학교'였다.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애굽의 왕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왕자의 허물을 벗고, 겸손한 사람이 된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 쓰신다. 출애굽을 이룰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온유한 사람을 영어로 meek 또는 humble 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실지로 팔복에서는 온유한 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약속을 하고 있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HRV)
Mat 5:5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NIV)
이러한 겸손한 자 (온유한 사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는 이스라엘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을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엘리야의 경우에도 그가 아세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 도합 850명 대 1의 갈멜산 대 결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에 이세벨의 한 마디에 큰 선지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껴 쫓겨간 곳은 바로 광야였다.
왕상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HRV)
1 Kings 19:4 while he himself went a day's journey into the desert. He came to a broom tree, sat down under it and prayed that he might die. "I have had enough, LORD," he said. "Take my life; I am no better than my ancestors." (NIV)
낙담한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시중을 들게 하시고, 다시 호렙산으로 피한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다. 선지자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대목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면,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그 분도 광야학교로 가셨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HRV)
Mat 4:1 Then Jesus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desert to be tempted by the devil. (NIV)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공생애를 준비하면서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어떻게 그 분에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것인가 다시한번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과의 교제,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고, 다시 허리 때를 졸라매는 시기였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인류 최초의 시험이었던 즉, 아담과 하와가 넘어진 그 자리에 다시 서셨고, 그 시험을 승리로 이끄셨다. 첫번째 전초전이 승리로 장식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광야학교의 동창생들이 변화산에서 다시 만난다.
([마17:4]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우리도 광야학교를 나오면 동창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광야는 그 시간이 험하고, 힘들지라도, 꼭 겪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 더욱 기도하는 시간, 더 준비하는 시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거룩한 시간이다. 광야는 축복의 시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거룩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실패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실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변화시키시고, 들어 쓰신다. 실패한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미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HRV)
Micah 7:7 But as for me, I watch in hope for the LORD, I wait for God my Savior; my God will hear me. (NIV)
미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HRV)
Micah 7:8 Do not gloat over me, my enemy! Though I have fallen, I will rise. Though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my light.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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